곽병준
역사적 지역 자원을 테마로 한 커뮤니티 공간 조성
「회화나무 샘터공원」 조성
어느 곳에 나무와 친구인 소년이 있었다. 나무와 소년은 언제나 즐겁게 함께 놀았다.
소년은 자라나서 나무에게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무는 나의 열매를 가져가라고 했다. 소년은 나무의 열매를 가져가 팔아 돈을 얻었다.
…
노인은 그루터기에 앉았다. 나무는 처음부터 끝까지 행복했다.
셸 실버스타인의 우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줄거리이다. 사랑하는 소년에게 모든 것을 내주면서도 마지막까지도 사랑하는 나무를 보면 그 헌신적인 사랑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책이 쓰인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세대불문 전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재밌는 점은 이 책을 쓴 작가 셀 실버스타인이 1950년대 먼 타지인 한국으로 와서 6․25 전쟁에 참전했다는 사실이다. 미국 시사지에 만평을 그리는 일을 했다고 하는데 어쩌면 전쟁기간동안 한국의 많은 나무와 사람들을 보며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오로지 상상일 뿐이지만.
예로부터 한국 마을들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있었다. 보호수라 하여 보존이나 증식의 가치가 있는 수목이면서 동시에 오랜 세월 동안 마을 주민의 휴식처와 안녕을 기원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런 보호수는 선조들의 숨결과 얼이 살아 숨쉬는 역사의 산증인이자 마을의 정신적 지주로의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산업화와 도시화의 영향으로 많은 보호수들이 옛 모습을 잃어버리고 있는 상황이다.
부산 사하구 괴정도에는 오래된 명물이 있다. 하나는 수령 650년이 넘은 회화나무이고, 다른 하나는 단물샘으로 불릴 정도로 물맛이 좋은 샘물인 통샘(샘터)과 그 물줄기로 형성된 도심 속 공동 빨래터(큰새미걸)이다. 회화나무는 198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고 오랜 세월 마을주민들은 이 나무 밑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쉬기도 하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빌기도 하는 등 마을 소통의 중심 공간으로 자리 잡아 왔다. 또한 통샘은 삼한시대부터 사용했을 것이라 추측되는 역사적으로 오래된 우물이며, 이 물줄기로 형성된 공동빨래터는 아낙네들이 방망이를 두들기며 시집살이의 스트레스를 풀었던 마을 사랑방이었다.
그러나 도시화와 불법주정차, 상점, 노후주택 등으로 인하여 생육공간을 침범당한 회화나무는 고사위기해 처해 ′93. 4월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되어 보호수로 관리되었고, 통샘은 수량이 줄어들고 수질이 나빠져서 더 이상 식수로 사용 못하게 되었다. 방망이를 두들기며 집안 대소사를 이야기하던 빨래터는 1995년에 골목길 확장공사로 규모가 줄어들게 되어 주민들의 휴식공간이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역사적 지역 자원을 테마로 한 커뮤니티 공간 조성
이에 사하구는 전문가 자문 및 주민간담회를 개최하여 재정비촉진지구 해제지역 특성에 맞는 사업을 개발하고, 사업비 89억원(12~14년)을 확보하여 마을공동체 여러 요소를 그대로 품고 오랜 세월 주민과 함께 해 온 이곳을 지역의 소중한 문화자산으로 인식하고 재건축을 통한 재개발이 아닌 원형을 보존하면서 현대적 감각에 맞는 「역사와 테마가 살아있는 커뮤니티 공간」을 조성하게 되었다.
먼저 주변지역에 대한 현황을 철저히 분석했다. 주변은 지하철과 버스정류장에서 5분 거리로 접근성은 좋았으나 좁은 골목길, 불법 주정차, 노점상, 노후주택 등으로 둘러싸여 회화나무와 통샘, 빨래터 위치가 분리되고 축소되어 지역적 문화자산 가치가 떨어질 뿐 아니라 주민을 위한 녹지공간과 휴식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었다. 또한 인근 골목을 따라 식당 등 상가가 밀집되어는 있었지만 주차장, 휴게시설 등 편의시설이 부족하고 특별한 관광요소가 없어 차차 찾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이용하고 싶은 공간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을 거듭했다. 자연을 통한 울림으로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괴정동만의 지역색과 정서를 부각시켜 장소성을 띄게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용자로 하여금 장소를 각인시켜, 다시 찾고 싶은 장소를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디자인은 지역의 자연, 역사, 문화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공간은 최대한 주민들이 편히 이용할 수 있도록 소통․열린공간으로 최대한 활용했다.
「회화나무 샘터공원」
「회화나무 샘터공원」은 사하구 괴정동에 2,230㎡의 규모로 조성되었다. 사업초기부터 주민설명회 및 현장회의 등을 통해 사업을 설명하고 주민의 의견을 적극 청취하였다. 또한 주민감독관을 3명 임명하여 설계단계부터 마무리 작업까지 주민의 의견을 반영하였다. 이 공원은 1970년대의 위성사진을 바탕으로 최대한 원형복원을 이끌어내었으며 통샘과 빨래터의 수량부족은 심층 지하수를 판 후 수도와 연결해 해결하고 비와 햇빛을 피할 수 있도록 지붕을 설치하였다.
달라진 모습들
회화나무 샘터공원이 조성되면서 주민들에게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자발적으로 공동체를 만들고 마을일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회화나무사랑나눔회’는 2013년 창립되었는데 주민 및 상인대표 등이 주축이 되어 불우이웃돕기 등 지역봉사를 위해 자발적으로 구성되었다.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마을일에 참여하여 불우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많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공원주변 상가거리에 서부산권에는 최초로 ‘착한거리’가 선포되기도 했다. 많은 점포들이 주기적으로 불우이웃을 위한 소액기부를 이어가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결과였다.
이 공간은 지역 예술인과 동아리들에게 무대가 되기도 하고 주민들에게는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했다. ‘찾아가는 「동네방네 골목영화관」 무료 영화상영’, ‘주민들이 신청하면 무조건 「찾아가는 사하문화공연」’이 성황리에 열리기도 했다. 또한 지역의 역사와 스토리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여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기도 하다. 회화나무의 상징을 표현한 「진입부 벽화」를 조성하여 미관을 정비하고 괴정 회화나무의 유전자원 영구보존을 위해서 ‘후계목’을 조성하기도 했다.
회화나무 샘터공원은 지금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주민, 상인회, 전통시장 등과 연계한 지역축제 및 주말장터를 계획하고 있다. 또한 회화나무 분양 및 합격기원 소망담장 등 지역 스토리텔링과 접목을 통해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여 관광명소화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한때 잠시 그 위용을 잃어버리기도 했었지만 회화나무는 오랫도안 그 자리에서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그 회화나무는 주민들에게 대화를 만들어 주었으며, 문화가 되었고, 휴식공간이 되었으며 관광요소가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주민들에게 희망이 되어줄 것이다. 부산 사하구의 회화나무야 말로 현대판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