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준
해방촌의 잠재력에 주목
주민과 공유하고 공감
해방촌 도시재생사업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
《오발탄》(誤發彈)은 1959년 작가 이범선이 쓴 단편 소설이다. <오발탄>은 월남한 사람들의 당시 1950~1960년대 생활상을 소재로 하고 있다. 6·25 전쟁 이후의 혼란스러운 한국. 주인공 송철호는 계리사(회계사) 사무실에서 일하며 겨우 생계를 이어가는데, 아내는 출산을 앞두고 있으며 어머니는 6·25 당시의 충격으로 미쳤다. 어머니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돌아)가자!”라는 말만 반복한다. 전쟁 참전용사인 주인공의 남동생은 권총강도로 잡혀가고 아내가 출산중 사망하는 등 갖은 고초를 겪다가, 양공주인 여동생이 준 돈으로 치과를 가 일종의 홧김으로 자신의 이를 치료하는데 쓴다. 이 때 의사가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앓던 이를 두 개 다 빼버렸으며, 마지막엔 택시를 타고 가다가 이로 인한 출혈로 의식을 잃는다.
꿈도 희망도 없던 당시의 한국의 모습을 비극적으로 나타낸다. 오래 전에 읽은 소설이지만 마지막에 오발탄이 된 주인공의 모습이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있다. 이 단편소설 <오발탄>은 전쟁 직후 해방촌을 무대로 암담한 사회상을 그려낸 작품이다. 해방촌은 용산 2가와 후암동 일대를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이 해방촌은 21C 지금도 용산구에 위치해있다.
해방촌(解放村)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2가동의 대부분과 용산1가동의 일부가 포함되는 지역으로 용산고등학교의 동쪽, 남산타워의 남쪽, 곧 남산 밑의 언덕에 형성된 마을이다. 1945년 광복과 함께 해외에서 돌아온 사람들과 또 북쪽에서 월남한 사람들, 그리고 한국전쟁으로 인해 피난을 온 사람들이 정착하게 되어 해방촌이라 불리게 되었다. 서울 도심의 주거지로서 해방 후 서민들의 애환과 삶의 자취, 역사적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60여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경성호국신사(108계단, 신사계단)가 설치되었으며, 해방직후 최초로 서울에 형성된 무허가 판자촌으로 서울의 도시주거지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60, 70년대 급격한 서울 팽창기에 전국의 가난한 지방민들이 자리 잡은 곳, 70,80년대 서울 골목길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 해방과 함께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만든 동네 바로 이곳이 해방촌이다.
그러나 해방촌에는 고질적인 한계가 있었다. 남산 고도지구 내 위치하고 있는 구릉지형 주거지역으로 정비사업 시행이 어려워 기반시설 확보조차 어려운, 주거공간이 쇠퇴한 지역이기도 하다.
게다가 20년 이상 노후 건축물 밀집(72.1%)과 협소한 가로망, 주차장 문제 등 부족한 기반시설 여건으로 열악한 주거환경을 현성하고 있다. 60~70년대 스웨터 가내수공업 활성화에 따른 해방촌 산업의 부흥으로 신흥시장(1968)을 중심으로 해방촌의 상권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80년대부터 지역산업이 쇠퇴했고 시장 구매력마저 저하됨에 따라 신흥시장 슬럼화가 가속화되고 시장기능은 상실하고 지역 상권마저 침체되었다. 젊은 층의 지속적인 감소와 고령화까지 심화되면서 전형적인 지역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용산구의 시름이 더 깊어지는 이유였다.
해방촌의 잠재력에 주목하다.
용산구는 해방촌이 지니고 있는 잠재력에 주목했다. 미군기지 이전 후 용산공원 조성과 관련하여 남산 – 용산공원 – 한강으로 이어지는 생태환경관 구축에 따라서 자연친화적인 주거환경이 조성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했다. 또한 주변 상권에도 주목했다. 이태원, 경리단길 등 해방촌 인근상권과의 차별화를 통해 골목경제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는 지역으로 상권의 중심인 신흥시장의 상징성을 활용하여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 할 수 있었다. 이미 해방촌은 다양한 공동체가 활성화 되어 있고 외국인 중심의 이태원 문화가 적극적으로 유입되면서 다양한 문화가 공종하고, 역사문화 자원이 풍부한 지역이었다. 29개의 직능단체와 11개의 마을공동체 등 다양한 사회적 관계망이 형성되어있었고 주거와 생활을 넘어 마을가치를 공유하고자 하는 공동체가 활성화되어있었다.
주민과 공유하고 공감하다.
주민과 함께하는 도시재생의 첫 걸음으로 사업시행 이전부터(’15 1~3월) 주민과의 공감대 형성을 위해 주민간담회, 주민설명회 등을 통해 소통과 이해의 폭을 넓혀갔다. 실제로 사업초기 지역 내 주요 직능단체 간담회를 10회 실시하고 공동체 조직 간담회도 7회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도시재생을 ‘재개발·재건축’으로 오해하는 지역 주민들의 사업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만들었으며 기 형성된 마을조직 및 단체장들을 대상으로 도시재생 사전설명회를 진행했다. 또한 주민전체를 대상으로 주민설명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해방촌 도시재생사업의 본격적인 추진을 알리고 재생의 추진방향, 추진일정 등 소개 및 질의응답을 통해 도시재생에 대한 주민 전방이 공감대 형성을 할 수 있도록 주력했다.
주민과 공공의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주민 스스로 투표를 통해 2015년 3월 31일 ‘해방촌 도시재생 주민협의체’가 출범하였다. 주민협의체에서는 보다 효율적이고 내실 있는 의사결정과 조직운영을 위하여 임원회의를 중심으로 전체운영위, 분과위 등 내실 있는 조직구성을 하였다. 또한 해방촌 도시재생을 위한 저변의 확대를 위해서 주민, 주민협의체, 전문가, 행정이 직접 참여하여 활성화계획 수립을 추진하였다. 주민의 의견을 모으고 이를 주민협의체 임원회의를 거쳐 검토할 수 있는 구조를 수립하였다. 이후에도 도시재생에 대한 주민 이해 증진과 관심 및 참여의 유도를 위하여 다양한 현장중심으로 주민접점을 확대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2016년에는 주민교육과 주민공모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해방촌 지역여건을 고려하여 주민이 공감할 수 있는 주민교육을 추진하고 해방촌 도시재생사업을 주민의 아이디어와 활동으로 직접 실현화 시킬 수 있는 제반여건 마련 및 지원 중심 공모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해방촌 오거리 디자인 아이디어 공모전’을 실시하기도 했다.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주민과 소통하였으며 해방촌 도시재생 사업을 주민과 함께 만들어갈 수 있었다.
사업성과 및 향후 추진계획
해방촌 도시재생 사업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사업이다. 우선 주민협의체, 서울시, 용산구 등의 단결된 힘과 재생에 대한 의지로 국가공모사업으로 선정되었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또한 지역주민과의 소통체계 구축을 통한 거버넌스 기반을 조성했다는 점도 중요한 점이다. 주민과의 소통을 통해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이 앞으로 더 주목하게 되는 이유이다. 용산구는 앞으로 공가활용 검토 및 기반시설 개선 등을 통해 삶의 질 향상을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 다양한 공동체 활동과 활발한 주민 참여를 더욱 이끌어내 도심 속 공동체 문화가 살아 있는 해방촌 조성에 앞장선다는 계획이다. 2016년 해방촌 도시재생활성화계획을 결정 및 고시하고 이후 2020년까지 도시재생사업을 단계적으로 시행을 추진할 예정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오발탄’이 된 사람들의 비극을 그린 소설 <오발탄>의 배경이 된 해방촌. 세월이 지나 해방촌은 마치 오발탄처럼 방향을 잃고 잘못 쏘여진 탄처럼 갈 곳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이제 해방촌은 주민들과의 적극적인 소통과 참여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앞으로도 젠트리피케이션 등 많은 문제와 부딪치겠지만 지금과 같은 소통이 함께한다면 어렵지 않게 해결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해방촌 도시재생 사업이 잘못 쏘여진 탄이 아닌 주민들 심장에 정확히 명중할 따뜻한 탄이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