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준
주민참여의 확대
주민참여예산제도운영 활성화
행정의 강력한 지원제도 강화
주민참여예산제도(Citizen Participatory Budegeting)는 1989년 브라질 리오그란데두술주의 주도인 포르투알레그리(Porto Alegre)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포르투알레그리의 참여예산제는 주민들이 직접 예산편성과정에 참여하는 모델로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고 이후 상파울루 등 블라질의 다른 대도시들로 확산되었다. 이후 남미,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으로 확산되면서 정부예산 운영방식에 변화를 일으켰다. 주민참여예산제도는 지방자치단체의 예산편성 과정에 주민이 직접 참여하므로 기존 예산편성제도보다 지역주민들의 의사가 보다 적절히 반영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주민참여예산제도는 주요 거버넌스 지표의 실적을 향상시켜 주는데 매우 유용한 제도로 평가되기도 하며 집행부의 예산편성 권한을 주민과 공유하여 주민의 공공서비스 수요와 선호, 그리고 각종 행정활동에 대한 의사와 의견을 예산에 반영하는 것으로 주민자치의 이념을 재정분야에서 구현하는 지방 거버넌스의 한 형태이고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행정부가 2003.7월 [지방자치단체 예산편성 운영기준]을 통해 주민참여형 예산편성제도를 권장한 바 있으며, 2011년 3월 8일 지방재정법을 개정하여 주민참여예산제도를 의무화하였다. 이후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주민참여예산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문제점들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먼저 가장 큰 문제는 낮은 시민참여와 다수의 무관심이다. 현실적으로 참여예산에 관여되는 주민은 굉장히 낮은 비율이며 대다수의 주민들은 제도의 존재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거나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또한 주민참여예산위원회에서 주민참여예산을 심의하는 등 핵심기구임에도 제대로 구성되지 않거나 구성되더라도 형식적인 기구로 운영되는 지방자치단체가 많다. 이런 이유로 최근 주민참여예산제도가 유명무실해진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주민참여예산제도는 잘만 운영된다면 장점이 많은 제도이기도 하므로 지적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비판을 수용하고 변화를 모색해야만 할 것이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했지만 주민참여예산제도의 실질적 운영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도 많다. 그 중 하나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이다. 영등포구도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해 잘 인지하고 있었다. 제도의 핵심은 ‘주민 참여’인데 주민의 의견을 예산편성에 참조하는 수준이라고 생각했으며 사업 부서에서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의 역 제안 및 선정이 다수였다. 또한 가장 중요한 기구 중의 하나인 주민참여예산위원회의 위원은 대부분 추천방식으로 선발되므로 연령·성별·분야·지역 등 대표성 저하의 우려가 있었다. 초기 제도 정착화 단계에서 공무원의 역할이 정형화되어 위원회 운영이 공무원(당연직)의 의지에 좌우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영등포구는 주민참여 확대, 제도운영 활성화, 행정지원 강화의 3트랙으로 추진하여 주민주도 방식 개편을 통한 영등포만의 참여모델을 계획하였다.
주민참여의 확대
영등포구는 주민참여예산제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주민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들을 내놓았다. 우선 주민참여예산위원회의 참여위원의 수를 확대할 계획이다. 기존 30명에서 50명으로 확대하여 참여위원의 수를 늘리고 보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기존 공개모집 및 추천 방식에서 무작위 선발 방식으로 선발 방법을 변경한다. 기존 위원들이 대표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수용한 것이다. 지역, 성비, 연령을 고려하여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동별 인구비례에 의해 무작위 추첨을 통해 선발하며 ARS를 통해 무작위 추출을 하고 1차 모집대상에서 전화 면접을 거쳐 주민참여예산제도의 이해도, 참여도, 적극성 등을 감안하여 주민을 선발한다는 계획이다.
엠보팅(전자투표)을 도입하기도 했다. 주민의 ‘제안’ 단계뿐만 아니라, ‘선정’ 단계까지 주민의 참여를 지속하여 책임감 있는 운영을 유도하고 기존 시행중이었던 주민제안사업의 선호도 조사(스티커 부착)은 유지하고 엠보팅 방식을 도입하여 더욱 풍성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동시에 지속가능한 주민참여를 유도하겠다는 생각이다.
제도운영의 활성화
제도운영을 보다 활성화하기 위해서 ‘찾아가는 주민참여예산제도 설명회’를 확대 개최할 예정이다. 영등포구 전 동을 대상으로 개최를 확대하고 주민참여예산제도 운영 방식, 참여의 중요성 인식에 초점을 맞춰 개최한다. 또한 기존에 시범적으로 사업발굴을 위해 운영하던 동 지역회의를 활성화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최소 30명 이상, 특정성별이 60% 이상이 되지 않도록 구성하게 하고 주민자치위원, 통·반장이 아닌 주민을 50% 이상 구성하게 하는 등 다양한 의견을 반드시 수렴할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39세 이하가 전체 구성인원의 20% 이상이 되도록 구성할 계획인데 다양한 연령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
제도운영 평가 및 모니터링을 더욱 강화한다는 계획도 내놓고 있다. 운영 현황 및 선정 사업에 대한 상시 평가를 진행하여 효율성, 실효성을 증대시키고 제안사업 모니터링을 통해 예산낭비를 방지하겠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주민참여예산제도를 통해 선정된 사업들 중에는 초기 제안자의 생각과 달리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부분들을 모니터링하고 방지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영등포구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평가 및 개선을 통해 주민참여예산제도가 더욱 활성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행정지원의 강화
주민참여예산제도가 원활히 운영되기 위해서는 행정지원이 필수적이다. 지금까지 무늬만 ‘주민참여’라는 지적이 나오는 부분도 행정지원의 부족이 큰 이유였다. 실제로 지자체가 지니는 예산 편성권을 침해받지 않기 위해 주민참여예산제도의 활성화에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있기도 하다.
영등포구는 주민참여예산위원 전문 교육 실시하겠다는 방침이다. 주민참여예산위원의 전문성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경우가 있으므로 전문 교육을 통해 이러한 의문점을 해결하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우수 주민참여예산 사업 현장을 직접 견학하여 실질적인 사례들을 벤치마킹하고 위원의 참여예산제의 이해를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주민참여예산제도에 대한 전문적인 행정을 지원하는 전담팀을 신설할 예정이다. 전문적인 행정조직을 구성·운영하여 주민참여예산제도의 실효성 있는 운영을 꿈꾸고 있다.
영등포구에 군부독재시절 감득·고문이 자행되던 옛 안기부 관련 시설이 소외 청소년 문화공간이자 놀이터로 탈바꿈했다. 신길동 ‘유스 스퀘어’(Youth Square)는 학교·가정에서 소외된 아동·청소년에 놀이 문화 상담 체험·서비스를 제공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발달장애인 대안학교인 ‘꿈더하기학교’가 있다. 꿈더하기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대안학교로 서울시교육청에서 인가받은 위탁교육기관이다. 2016년 4월 설립된 이 대안학교는 설립이후 발달장애인 학생과 학부모에게 웃음을 돌려주기도 했다. 바로 이 학교가 주민참여예산제사업으로 2억 원의 사업을 편성하여 설립된 학교이다. 이 학교는 주민참여예산제도가 제대로 활용된다면 주민과 지자체 모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신호를 주고 있다.
이름만 있고 영원한 실체가 없다는 뜻의 유명무실(有名無實)이란 말이 있다. 불교에서는 모든 물체는 그 이름은 있으되 인연이 다 되면 그 이름조차 없어진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주민참여예산제도가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해버렸다는 최근의 비판들을 보면 지금의 상태라면 그 이름조차 사라질까 우려스럽다. 앞으로 유명무실한 주민참여예산제도가 아닌 명실상부(名實相符)한 주민참여예산제도로 재탄생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