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AN 최호진
유곽골 사람들은 더 이상 산업 쓰레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반세기에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뤄냈고, 그것을 한강의 기적이라 부르고 있다. 광복 후 70년 동안 우리 경제는 말 그대로 폭풍성장을 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반도체와 조선업의 신화를 쓰는 등 우리 경제의 외형이 빠르게 성장해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두운 그림자도 많았다. 우리가 이루었던 한강의 기적에는 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다. 하지만 희생만을 강요하고 그들의 삶을 돌보는 데는 인색했다.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살아가는 아이들을 돕자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런데 무엇을 돕자는 것인지, 과연 진심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생각해보라. 80년대까지만 해도 석양을 등지고 쓰레기더미에서 다시 이용할 수 있는 재료를 찾고 있던 넝마주이를 기억하고 있는가? 서울 월드컵경기장 주변 난지도는 물론이고, 강 건너 강서구 일대까지 악취가 풍겨 사람이 살 수 없었던 것은 기억하고 있는가? 그곳에서 꿈을 줍던 아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기억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되는가? 우리는 여전히 ‘그들’이라 부르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그들’을 여전히 불필요한 존재이며 여분으로 취급하거나 쓰레기 등급 판정을 내리고 있다. 산업화 사회에서 압축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고 한다. 정밀하게 싸인 틀에서 제한적인 인재들이 주도할 수밖에 없 었고, 급격한 사회발전과 함께 산업화 쓰레기 취급을 받는 계층들이 생겨났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대량생산이 필요했던 산업화과정에서 폐기된 인간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불필요한 존재로 버려졌고, 여분의 인간으로취급되었다. 아니, 어쩌면 마땅히 처리할 곳이 없어 골칫거리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들은 주인 없는 땅을 찾아 떠돌았다. 개발의 여파가 미치지 못하는 곳, 비거주지역으로 규정된 땅을 찾아 떠돌았다.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곳으로, 그 누구에게도 골칫거리 취급받지 않기 위해 떠돌았다. 그들은 마지막 머물고 있는 곳이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유곽골이다.
서울 사람들의 기억속에 마포 난지도는 여전히 쓰레기 냄새 진동하는 산이다. 그런 난지도에 꽃이 피었다는 기사를 접했을 때는 거의 기적처럼 느꼈을 것이다. 난지도는 원래 난초가 지천에 피었던, 아름답고 작은 섬이었다. 그런 난지도가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서울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서울의 쓰레기 양이 늘어나자 서울시가 난지도 매립장을 마련하고 그곳에다 산업쓰레기를 묻으면서 쓰레기산이 되었다. 사람들은 떠났고, 난지도는 물론 주변에도 쓰레기 냄새가 진동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이 떠난 자리에 쓰레기들 사이에 재활용품을 주어서 생활하는 재건대, 넝마들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이 열리면서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흙으로 덮고, 그 위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흙을 덮고 나무를 심은지 13년, 그곳에서 생활하던 넝마들도 어디론가 떠났다. 그들이 어디로 떠났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경기도 고양시 화전동(花田洞), 이 지역은 예로부터 각종 꽃이 피었고, 꽃밭을 이루었다하여 화전이라 불렀다. 이곳에 1960~70년대 서울 재개발 때 철거민들이 서울과 인접한 화전동 일부 지역으로 집단 이주해 와 힘든 삶의 터전을 이룬 달동네가 있다. 고양시 화전13동, 고양시 유일한 달동네 유곽골이다.
이곳에는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에서 생활하던 넝마들도 함께 이주해 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유곽골 사람들이 아직도 삶의 터전을 삼고 있는 이유는 이곳은 그린벨트 지역에 군사시설보호 구역이며, 수도권 정비구역이고 고도제한 구역이기 때문이다. 435명이 살고있는 유곽골은 여전히 삶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있다. 이곳 주민 49.4%가 취약계층이며, 노인이 42.9%(91명)이다.
옛날 유곽골은 선비들이 정담을 나누었던 유서 깊은 마을이다. 이곳에 곽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이 살았다고 유곽골로 불렸다는 말도 있고, 조선시대 글 공부하던 선비들이 유곽에 모여 국사를 논의했다하여 유곽골이라 불렸다는 주장도 있다.
하기야 화전동도 각종 꽃이 많이 피어나 꽃밭이라는 뜻으로 화전(花 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과, 화전(火田)이었는데 ‘불화(火)’자를 대신 ‘꽃화(花)’자를 써서 지금의 화전이 되었다는 이야기, 한강으로 이어진 산줄기의 안쪽이 꽃밭이 되어 화전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어느 것이 맞을지는 모르나 선비들이 정사를 논했던 곳이든 각종 꽃들이 만개했던 화전이든, 아름다운 난초가 흐드러지게 피어났던 난지도에서 쫓겨나 유곽골에서 살고 있는 사람과는 거리가 먼 지명임은 분명하다.
유곽골은 골목과 주거지의 소유지가 외부인이 많이 거주하여 행정력 투입이 어려운 곳이다. 소방, 조도, 범죄, 쓰레기, 겨울철 이동 등이 매우 어려운 경사지로 다양한 문제가 발생했던 곳이다.
이곳에 착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고양시는 안전취약 지역이던 유곽골 사전 현장조사를 실시했고, 행정자치부 ‘저소득층 밀집지역 안전 환경개선사업’ 공모심사에 선정되어 경기도에서는 유일하게 국비 5억, 도비 1.5억, 시비 3.5억 등 총 10억원의 사업비를 확보하게 되었다.

1년간의 사업구상과 답사과정, 주민설명회, 주택소유지 설득, 입찰 과정 분야별 공사 등 소통과 협의 과정을 거쳐 착한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고양시는 유곽골에 쌈지공원 조성, 야간안전시설 설치, 벽화 골목길 조성, 화재안전시설 설치, 생활안전시설 설치 등 5개 분야에 집중하여 사업을 추진하였다.
고양시는 비좁은 골목길은 아름다운 벽화로 단장했다. 폐가와 빈터에는 정자와 체육시설을 갖춘 쌈지공원을 만들었다. 무너질 위험이 있는 곳에 석축을 쌓았고, 가파른 언덕에는 안전난간과 손잡이, 계단 등을 설치했다. 마을 공유지에는 쓰레기보관소가 들어섰다. 곳곳에 소화전과 제설함, 보안등이 설치됐다.
그리고 유곽골에 착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을 조성사업이 마무리되면서 꽃길, 동화길, 힐링길, 무지개길, 달맞이길 등 벽화작업이 마무리되고 꽃밭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더욱 반가운 것은 산업화과정에서 쓰레기취급받던 사람들의 허름한 삶도 함께 밝아졌다는 것이다. 칙칙하고 어두컴컴했던 판자집 분위기가 났던 유곽골이 아주 예쁘게 변했다는 것은 그분들의 삶을 더 이상 쓰레기 취급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약속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하고 위험천만했던 삶의 공간을 조금은 편하게 살 수 있는 삶의 터전으로 바꾸었다는 점에서 매우 반갑다. 유곽골의 도시재생은 고양시 다른 지역의 대형 개발사업처럼 원주민의 정착율이 30%에 못 미치는 그런 것이 아니어서 좋았다. 가파른 골목을 오르기 위해 밧줄을 달아 잡고 오르던 삶마저 송두리째 빼앗아가는 것이 아니어서 더욱기뻤다.
유곽골은 다른 벽화도시와는 사뭇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유곽골에서 무엇을 보아야하며 어떤 것에 초점을 맞춰서 관찰해야 할지에 대해 주민들과 함께 고민하면서 시작되었다. 유곽골 도시재생은 시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떻게 설계되고 계획되어야 진정한 도시기능을 발휘하는 도시가 될 것인지를 탐색하는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설계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고양시가 새로운 도시계획을 하고, 현재 주민들이 보다 편리하고 안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서울 수색에서 고양시로 들어오면 첫 번째 버스 정류장이 유곽골이다. 마을 경사로가 급하다 보니 주민들이 경사로에 밧줄을 치고 오르는 곳이다. 고양시는 이러한 주민들의 불편이 자유로운 삶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에 안전난간과 계단을 우선 설치했다. 슬레이트 지붕이 골목길까지 드리워져 위험했던 요소들을 제거했다. 야간안전 시설 설치, 벽화골목길 조성, 화재안전시설 설치, 생활안전시설 설치 등도 모두 유곽골 주민들의 최소한의 자유로운 삶과일치해 있다.
우리 사회는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경쟁에 밀려난 사람들, 산업화 과정에서 쏟아져 나온 배설물들을 보이지 않는곳에 묻거나 안 보이는 데 치우기에 바빴다. 그저 부담으로만 느꼈고, 그마저도 우리가 끌어 안아야 하는 것임을 외면했다. 80년대 중반까지 난지도 매립지는 엄청난 규모의 쓰레기더미가 산을 이뤘고, 무수한 트럭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올라가 쓰레기를 내려 놓았다. 그리고 난지도는 무수한 파리떼와 시커먼 침출수, 참기 힘든 악취가 풍겼다. 그런 난지도에서 버티며 힘겨운 삶을 이어왔던 이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리고 그곳을 지금은 하늘 공원이라 부른다. 하지만 최소한 그곳을 하늘 공원이라 부르는 것이 정의로우려면 유곽골 사람들의 삶도 함께 끌어안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여전히 진행 중인 유곽골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주목하고 있다. 여전히 유곽골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디에서 왔는지, 무엇을 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별로 없다. 그런 곳에 고양시가 손을 내밀었다. 그래서 고양시의 슬로건이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도시인가보다.
인터뷰_최성 고양시장
문 ─ 고양시 화전동 달동네 유곽골은 어떤 곳인가요?
답 ─ 산업화 과정의 어두운 상처를 모두 품고 있는 마을이라고 할까요? 화전동은 본래 예로부터 구릉이 많고 한강과 자연하천인 창릉천을 끼고 있어 꽃이 많아 꽃밭이라 하여 화전이란 이름을 붙였고, 유곽이란 지명은 한양 인근에서 선비들이 모여 정사를 보며 유흥을 즐기는 유곽이 있다하여 유래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시의 생활폐기물의 집하장인 난지 쓰레기 매립장이 산 처럼 들어서고 서울시 영역확대와 도심개발로 인근 도시로 이주해야 했던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사람들은 화전동과 향동동의 산으로 천막과 간이건물을 지어 이주해서 생겼으나 대부분 남의 연고가 없는 산기슭에 터를 잡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40여 년간 이 마을을 지키고 있습니다.
문 ─ 유곽골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는가요?
답 ─ 유곽골은 산기슭에 있고 그린벨트 지역과 군사시설보호구역, 고도제한 등 많은 재산권 제한으로 토지소유자의 개발 어려움이 있는 곳입니다. 오래전부터 정착하여 살던 사람들이 사용료를 내며 다른 곳으로 이전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많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절반 이상이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노령으로 인해 사회적 보호가 요구되는 고양시 유일한 달동네입니다.
하지만 서울 등 다른 지역 소유자에 연락의 어려움과 도시계획의 불가로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고, 골목길 하나 개선할 수 없어 생활 불편 여건은 오랫동안 개선되지 못한 채 불편을 감수하고 특히, 겨울철에는 거동이 불편하여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기도 하였습니다.
문 ─ 유곽골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요?
답 ─ 변화를 위한 노력에는 세입자의 동의뿐만 아니라 거주하지 않는 소유자의 동의가 가장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지반 등 지형적 환경이 열악한 상태로 정밀한 조사와 전체적인 편리성 개선에 중심을 두고 접근해야 했기 때문에 그 과정만 1년여 세월이 소요되기도 하였으나 결국 소유자와 거주자의 동의를 위한 꾸준한 합의 과정을 통해 상호 이해로 풀어나갔고, 방향과 사업추진에 함께하기로 합의하여 좋은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문 ─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답 ─ 열악한 삶의 터전을 개선하기 위하여 가장 우선점을 둔 것은 소방과 조명등 안전시설 확충이었습니다. 편리성 개선을 위해 이동시 불편 요인을 체크하여 제거 또는 보강하였으며 화전동 지역의 역사성을 반영하면서 환경개선사업을 병행하여 위험지역을 공원과 체육시설이 있는 건강쉼터로 개선하는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적용하여 지역주민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문 ─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주세요.
답 ─ 안전시설과 골목길 환경사업의 지속적인 유지를 위한 모니터를 주기적으로 실시하려고 합니다. 독거노인과 저소득층을 위한 지원사업도 관심 고조로 활발히 진행하게 되었으며, 관광객의 잦은 발걸음으로 주변 상가가 활성화되는 등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되고 있어 함께 성장하는 좋은 사례로 남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변화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계획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