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 최호진
꽃으로 마을을 심폐소생술하다.
심학산 돌곶이 꽃마을 되살리기 프로젝트
여덟 살 때였다. 하얀 병실, 하얀 침대에 매달린 투명색 링거. 나는 그 옆에 놓인 하얀 백합 한 송이에 시선이 멈췄다. 낯설었다.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꽃이었다. 꽃 이름을 물었다. 순결, 순수의 꽃말을 가진 백합이라 했다. 그렇게 만났다. 꽃마다 꽃말이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내 눈에 비친 그 하얀 백합꽃은 간호사들의 환하게 웃는 모습과 닮았었다. 어느 날이었다. 꽃이 시들기 시작했다. 물도 듬뿍 주고 잎새도 어루만졌지만 소용이 없었다. 꽃병에 갇힌 채로 꽃은 그렇게 순간에 지고 말았다. 어린 나에게 꽃이 진다는 것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충격이었다. 그래서 울었다. 누가 갖다 놓았는지 교실에는 항상 꽃이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꽃이 싱싱하게 피어있어도 언제나 불안했다. 순간 지는 것이 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꽃들이 그렇게 순간 지는 것은 꽃병에 꽃을 꽂기 위해 사람들은 밑가지 잎을 훑어내고 꽃병에 꽂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신성하고 순결한 교실에 꽃과 꽃병이라니. 이해되지 않았다. 교실에 놓인 꽃병은 수시로 꽃이 바뀌었다. 그때마다 나는 꽃병 주변을 서성였다. 꽃 이름과 꽃말을 작은 소리로 들려줬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라는 것에 슬펐다. 어린 나는 꽃은 치유의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나는 꽃과 더 오랜 시간 어울리고 싶었다. 꽃은 어울릴 때 더 아름답다고 믿었다. 아주 오래전의 기억이다. 나는 꽃병에 꽂기 위한 꽃은 절대 선물하지 않았다. 꽃병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처럼 나에게 절화(cut flower)는 어린 시절부터 인간의 욕심으로 각인되었다.
경기도 파주시 서패동, 그곳에는 나지막하지만, 우뚝 솟은 심학산이 있다. 산은 높이로만 말하는 게 아니다. 산이 솟아난 자리에 따라 높이는 숫자에 불과할 수 있다. 넉넉하게 붉은 석양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김포, 문산, 고양 일대와 북녘의 개성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정상에 오르는 길은 부드러운 흙길이어서 맨발로 걷기 좋은 산이다. 그리고 심학산 허리쯤에는 시원한 약수가 흐르는 약천사가 있고, 앞마당에는 남북통일을 염원하며 만들었다는 약사여래대불이 있다. 그리고 심학산 아래 자리 잡은 돌곶이 꽃마을. 그곳에는 매년 ‘꽃, 자연, 사람이 함께 그리는 에세이'라는 주제로 마을 축제가 열린다.
파주시 서패동 돌곶이 꽃마을 축제는 대형 테마파크나 지역축제와는 그 내용부터 사뭇 다르다. 그리고 돌곶이 꽃마을에 꽃이 피어야 하는 이유부터 다르다. 파주시는 돌곶이 꽃마을은 꽃으로 심폐소생을 하는 중이다. 돌곶이 꽃마을 산자락엔 돌을 날라 꽂아 놓은 듯 보이는 커다란 바위들이 모여 있다. 그래서일까? 돌곶이 꽃마을에는 마을구성원의 변화가 급격히 진행 중이다. 마을 주변에 대규모 산업단지와 쇼핑시설이 들어서면서 2007년에는 2가구에 불과했던 상가 주민이 2014년에는 45가구로 급증했다. 이에 반해 2007년 40가구였던 지역 주민은 2014년 28가구로 줄었다. 이와 같은 마을 구성원의 급격한 변화로 작은 마을에 갈등과 반목이 지속되었다. 마을에 꽃이 피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예전부터 이곳은 꽃마을로 불렸다. 주민들과 공무원이 마을 안길에 야생화를 심고, 양귀비씨를 뿌려 공간을 가꿔왔던 곳이었다. 2007년부터 3년간 마을 꽃축제를 개최하며 대한민국 대표축제로서 여러 번 수상한 경험이 있는 마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체장이 바뀌었고, 주변 환경 또한 바뀌었다. 파주시가 마을 사업을 무리하게 주도하다보니 그 가치를 잃고 돌곶이 꽃마을 축제는 중단되고 말았다. 하지만 민선 6기 출 범과 함께 공약사업으로 제시되면서부터 주민과 행정기관 사이에 꽃마을 되살리기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다만 변화된 환경에서 지역 특성을 최대한 살리는, 마을 고유의 정체성을 살리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우선 기존의 관주도형 대규모 축제에서 마을주민 스스로 꽃마을을 되살리는 방법이 제시되었고, 위원회 구성도 주민주도 형으로 추진되었다. 이에 따라 시민 꽃밭 조성, 개인정원 가꾸기, 정원 투어링, 정원 콘테스트 등 축제장 중심이 아닌 마을 속으로, 마을 전체의 축제로 바꾸어 나갔다. 축제 기간만의 축제가 아니라 계절별로 특색 있게 연중으로 진행하는 마을 축제로 변모시켜 나갔다. 이를 위해 파주시는 주민들의 화합을 도모하고, 상가주민들의 협력을 이끌어내 는 3박자의 하모니를 이룰 수 있는 세밀한 계획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우선 주민과 상가의 화합을 위해 지역주민 26가구와 지역상가 40가구 등 66가구가 참여하는 꽃마을 되살리기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는 돌곶이 꽃마을 가구 구성원 대부분이 추진위원회에 참여했음을 뜻한다. 돌곶이 꽃마을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다른 대형 축제와는 다르게 시골 마을 풍경을 그대로 활용해 다랑이 논과 밭, 기암괴석 등과 꽃이 어울리면서 더 아름답게 빛났다. 양귀비, 안개초, 수레국화 등 야생화가 논에 피어있고, 마을 마당에는 튤립과 철쭉 등으로 꾸며져 있었다. 무엇보다 도시인들에게 절화(cut flower)나 축제 기간에만 관리되다가 정리해 버리는 대형축제와는 다르게 돌곶이 꽃마을 축제는 꽃을 일상으로 품고 있다는 점이 어필되었다. 사계절 동안 오픈된 공간에서는 개인정원 콘테스트가 열리고, 음식점 카페 디스플레이 콘테스트가 진행되었다. 파주시민들을 대상으로 시민꽃밭을 분양하기도 하고, 가든투어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작은 공원 음악회를 개최하여 관람객들의 발걸음을 잠시 쉬어가도록 했고, 소박한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를 준비했다.
돌곶이 꽃마을 축제는 치유와 어울림이었다. 인접해 있는 롯데 아울렛과 출판단지, 심학산을 활용한 축제였고, 롯데 아울렛과 출판단지를 방문하는 이들의 자연스러운 방문을 유도했다. 심학산 걷기대회를 가든투어 시즌과 병행하고 작은 음악회를 개최했다. 정원 투어링과 개인, 상가 가든 콘테스트를 진행하면서 각종 꽃들이 아름다운 꽃밭을 이루듯이 다름의 어울림을 마을 꽃축제를 통해 만들어갔다. 꽃은 우리에게 치유를 선물한다. 그리고 욕심을 버린 사람들에게 꽃은 더 많은 것을 내어준다. 꽃밭은 다양한 꽃들과 꽃말의 어우러짐이 있어 아름답다. 도시재생은 욕심에 대한 깨달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어우러짐이다. 그래서 도시 재생은 또 다른 탄생이다. 꽃과 자연, 사람이 함께 그리는 파주 돌곶이 꽃마을 에세이가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터뷰_이재홍 파주시장
문 ─ 심학산 돌곶이 꽃마을을 소개해주세요.
답 ─ 심학산 돌곶이 꽃마을은 전국에서 유일한 정원마을로서, 마을 주민 대부분이 10년 이상 꽃을 직접 심고 가꿔온 노하우를 지녀 개개인의 정원이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고, 마을안길과 마을꽃밭에 계절마다 볼 수 있는 야생화가 항상 피어있습니다.
심학산 돌곶이 꽃마을은 8년 전, 공무원과 주민들이 한 포기, 두 포기 정성스럽게 야생화를 식재하여 일구어냈습니다. ‘꽃, 책, 그리고 자연’을 모토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간 꽃축제를 개최하여 연 평균 100만 명 이상이 다녀갔으며, 행정자치부 주관 「2008 대한민국대표축제」 지역특화부문 대상을 수상했고, CNN이 한국 명소 50곳 중 한 곳으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10년부터 자치단체장 교체와 대형 아울렛 입점에 따른 물리적 환경변화로 축제가 중단되고 무관심 속에 방치된 이후 점차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지역개발로 인한 상가의 급증은 마을 내 주차, 교통불편 등으로 이어져 주민과 상가 간 반목이 심해지는 등 꽃마을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말았습니다.
민선 6기 출범과 함께 소외된 도심 외곽을 특색있게 살려보자는 취지의 ‘지역 특성 중심 축제지원 및 홍보확대’ 공약은 돌곶이 꽃마을 되살리기 사업의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되었습니다. 행정기관과 주민이 꽃마을 되살리기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 계기가 되었으며 변화된 환경에서 지역 특성을 최대한 살리자는 프로젝트는 꽃마을을 6년 만 에 다시 피어나게 한 것입니다.
문 ─ 돌곶이 꽃마을 되살리기 사업은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답 ─ 돌곶이 꽃마을 되살리기 사업은 2014년 10월 주민과 상가가 다시 손을 맞잡고 조직한 “심학산 돌곶이 꽃마을 추진위원회”로부터 태동하였습니다. 꽃마을을 되살리기 위해 마을에 꽃을 심고, 잡초를 제거하며 주민과 상가 간의 오래된 반목을 치유했습니다.
사업 추진방향은 관주도형에서 주민주도형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관에서는 주민들이 원하는 꽃씨와 꽃모종, 행사개최 등 행정적 부분만 지원하고, 주민들이 직접 파종부터 관리까지 마을을 스스로 가꾸었습니다. 기존 축제가 한정된 장소에서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여 특정 시기(봄) 에만 개최되었다면 이번 프로젝트는 마을 전체를 정원화함으로써 연 중 계절별로 특색있는 축제가 마을 속으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이를 위해 주민들은 돌곶이 꽃마을에 3,000여 평의 마을꽃밭을 조성하여 봄에는 꽃마을의 트레이드마크인 꽃양귀비와 안개초, 수레국화를, 가을에는 코스모스를 피워냈습니다. 또한, 마을안길 1.6㎞ 구간에 샤스타데이지, 꽃범의꼬리, 국화 등의 초화류을 식재하고 개인별 구간 관리제를 도입하여 관수 및 잡초제거를 담당, 계절마다 방문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했습니다.
시에서는 주민이 아름답게 가꾼 정원과 꽃마을을 널리 알리고 홍보하기 위해 지난 6월 개인정원 콘테스트를 개최하여 시상하고, 마을정원 투어링을 열었습니다. 또한, 다시 태어나는 꽃마을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유도하고자, 시민꽃밭 11개소를 분양하여 어린이집, 유치원, 조경전문가, 시민 등이 참여하여 함께 가꾸는 꽃마을을 만들었습니다.
주민과 관의 긴밀한 협력으로, 마을 가꾸기에 소요되는 비용이 약 1억 원 가량 절감되었고, 시의 이미지는 제고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행정기관과 지역주민이 의기투합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꽃마을이 활성화되면서 주변 지역 상가 매출도 부쩍 늘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게 되었습니다. 주민의 자발적 의지, 상가와 주민 간 화합, 그리고 행 정지원까지 삼박자가 잘 맞아떨어져 꽃마을의 정체성을 되찾았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문 ─ 마을의 변화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요?
답 ─ 기존의 관주도형에서 주민주도형으로 사업이 추진되니, 마을 구성원들은 마을에 어떤 꽃을 어떻게 심을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스스로 수익을 창출할 방안을 꾸준히 모색하고 있습니다. 현재 마을 안에 작은 마을 매점을 운영하여 호박만두, 옥수수, 쑥개떡 등을 판매하면서 마을 운영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내년 꽃밭에는 경관성과 함께 수익성이 있는 식물을 선발하여 재배할 예정이며, 마을 방문객을 위한 마을 해설사를 자체 선발하여 운영할 계획입니다.
또한, 이번 2015 전국 기초단체장 매니페스토 우수사례 경진대회 최우수상 수상을 통해, 꽃마을의 위상이 회복되었고, 타 읍·면·동에서도 돌곶이 꽃마을을 롤모델 삼아 정원마을 조성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마을 방문객도 전에 비해 40% 이상 급증해 지역경제에 큰 도움이 되고 있으며 벤치마킹을 위해 방문하는 시민, 단체도 늘어 나 꽃마을 주민들은 매우 높은 자긍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문 ─ 꽃마을 되살리기 사업을 꽃과 사람, 자연이 함께 그리는 에세이라 하던데 마을재생사업을 하면서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답 ─ 주민들이 꽃을 통해 화합하고 즐겁게 꽃마을을 조성하는 과정을 함께하며, 꽃의 아름다움을 사람의 마음에서 피워내는 일이 어렵지만 매우 뜻깊고 가치 있는 것임을 다시 느꼈습니다.
돌곶이 꽃마을 되살리기 사업은 이제 시작으로 앞으로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지만, 주민들의 마을에 대한 깊은 애정이 없었다면 마을재생사업은 결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업을 진행하면서 상가와 주민 간 마찰도 간혹 있었지만, 추진위원장께서 리더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해 주셨고 주민들은 위원장을 중심으로 서로 오해를 풀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 결속력이 다졌습니다. 돌곶이 꽃마을이 주민만을 또는 상가만을 위한 것이 아닌 시민 모두를 위한 마을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문 ─ 주변 마을로 확대하는 계획도 가지고 있나요?
답 ─ 심학산 돌곶이꽃마을의 성공사례를 발판으로 삼아 “정원마을만들기”란 테마로 도시 재생사업을 점차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관내 여러 마을에서 돌곶이 꽃마을처럼 꽃을 테마로 한 정원마을 조성을 원하는 곳이 증가하였습니다. 파주시는 “2016년도 정원마을만들기” 공모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각 마을 대표가 주민과 상의하여 마을에 적합한 콘셉트를 정하고 마을 꽃밭과 꽃길 등을 직접 배치하며, 향후 유지·관리 방안계획까지 세워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는 열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27일에 공모마을을 대상으로 실시한 발표 및 현장 심사를 통해 5개 마을을 선정, 2억 8천만 원의 사업비 지원을 확정하였습니다. 2016년부터 마을주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특색 있는 테마와 향기가 있는 정원마을을 가꾸어 갈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파주시는 주민의 화합과 노력의 결실을 꽃으로 피워 「정원의 도시 파주」로 거듭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