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 최호진
도시의 기억과 고단한 삶, 젊은 예술인들의 상상력으로 재탄생하다
도시는 땅의 기억에 젊은이들의 상상력을 더해 재탄생한다. 아픈 역사와 힘겨운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곳, 문래동 철공소의 역사와 삶, 예술촌으로서의 재탄생이 그렇다. 영등포구 여의도동은 국회와 방송국, 증권가가 즐비하다. 서여의도에는 국회와 방송국이 있고, 동여의도에는 은행권과 증권거래소가 있다. 하지만 영등포구 대부분은 문래동처럼 공장과 주거기능이 혼재되어 있다.
영등포구에는 서울시 준공업지역의 33%가 집중되어 있다. 준공업지역의 특징은 건축법상 가장 많은 시설군 설치가 가능하고, 특히, 위험물처리시설 같은 주민기피시설 설치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쉽게 말하면 주거지역 바로 옆에 공장이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준공업지역은 60-70년대 산업화 시기에는 경인공업 지역의 큰 축으로 서울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대규모 공장이 이전하고, 산업이 쇠퇴하면서 노후한 공장과 주택이 혼재된 낙후지역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서울의 준공업지역 대부분은 90년대 이후 대규모 공장 이전이 시작되었고, 산업 쇠퇴로 빈 공장 증가하면서 지역의 슬럼화가 가속됐다. 준공업지역에서 정비사업을 추진할 때에는 신축 건물의 30%를 부가가치가 낮은 공장이나 창고 등 산업시설로 지어야 한다. 때문에 준공업지역의 재개발은 사업성이 떨어져 참여하려고 하는 업체가 거의 없다.
준공업지역의 문제점 중 첫 번째는 지정 취지가 더 이상 현실과 맞지 않다는 것이다. 공장이 10% 이상인 지역은 일부에 불과하며, 공장 밀집 지역도 주차장,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부족하고 슬럼화되어 위험한 지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두 번째는 주거환경 문제이다. 소음과 분진으로 주민들의 고통이 심각하고, 공장 거의 없는 주택지도 주거 중심의 정비사업을 추진하기 어렵다. 세 번째는 정비사업 추진을 위해 도시계획이 결정되어도 과도한 규제로 사실상 개발이 어렵다는 점이다.
영등포구 양평동 준공업지역에 위치한 주택가를 살펴보면, 서울이라고 믿기 어려운 모습을 하고 있다. 공중화장실과 LPG가스를 사용하는 등 매우 열악한 환경이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려고 해도 과도한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준공업지역의 법적 용적률은 400%이나 아파트 건립 시 용적률이 250%로 줄어들고, 공장이나 업무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준공업지역 문제는 20년 가까이 서울시와 구청이 풀어야 할 큰 숙제로 남아있다. 영등포구가 이러한 문제로 계속 고민하던 중, 해결의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준공업지역 재생을 위한 기회가 맞은 것이다. 2014년 서울시에서 2030서울도시기본계획을 발표했는데, 영등포가 서울의 3도심 중 한 곳으로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3도심 중 가장 낙후된 영등포를 도심의 위상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게 되었다. 또한, 문래동 준공업지역에 예술창작촌이 자생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공장이 떠난 빈 공간에 예술가들이 이주해 온 것이다. 구청은 문래동에 약 300여 명의 예술가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그 숫자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영등포구가 추진하는 준공업지역 모형은 대략 이렇다. 환경이 열악한 지역은 전체적으로 정비사업 추진을 지원하고, 문래창작촌 같은 지역은 전면 재개발보다는 현재의 특색을 살리는 것이다. 주민과 전문가, 공무원이 함께 발전계획을 수립하여 산업, 주거, 문화가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민, 예술인, 소공인들이 직접 도시재생에 참여하여 준공업지역 발전계획에 주민의 삶을 담아내는 것이다.
영등포구는 발전계획 수립을 위해 서울시 자치구 중 가장 먼저 생활권계획 주민참여단을 구성했다. 생활권계획이란 서울도시기본계획에 지역의 이슈들을 담아내는 중간계획이다. 영등포구는 주민을 공개모집하여 워크숍을 개최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서울시에 건의하였다. 총 5개 생활권 중 4개 생활권은 워크숍을 완료하였고, 1개는 2015년 하반기에 개최할 예정이다.
워크숍에서는 주민들이 직접 마을 지도를 그리고, 자원을 파악하고 지역의 문제점과 미래상에 대한 의견들을 주고받았다. 또한 영등포구는 규제의 주체인 서울시의 협력을 끌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서울시 부서, 서울시의회와 계속적으로 소통하고, 현장에서 주민들과의 만남을 주선하여 시의원들 대부분이 준공업지역의 심각성을 공감 하게 되었다. 그 결과, 과도한 규제를 개선해달라는 영등포구의 건의사항을 받아들여 2015년 7월에 도시계획조례 개정이 발의되었다. 이러한 과정들이 간단하지는 않았다. 중간중간 주민들이 언성을 높이고, 서울시 담당 부서에서는 난색을 표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도 용도지역을 조정하는 사안은 지역, 주민마다 의견이 많이 달라 주민협의체를 구성해서 계속 조율 중이다. 주민협의체에서는 주민대표와 의원, 전문가와 공무원이 함께 모여 생산적으로 토론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영등포를 도심으로 육성하고 문래창작촌을 통해 도시재생의 새로운 방향성을 만들어가겠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영동포구의 대표적인 준공업지역인 문래동 철공소 골목은 우리의 근현대사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일제 강점기 문래동은 군소 방직 업체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문래동의 이름도 목화씨에서 실을 자아내는 틀인 ‘물레’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해방 이후 제조업의 부품 소재를 만드는 철공소 집적지가 되었다. 그리고 80년대까지 문래동 철 공소 골목은 문래동에서 만들지 못하는 것은 세상 그 어디에서도 만들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최고의 금속 가공 기술을 보유했던 곳으로 국내 산업발전과 궤를 같이했던 곳이다. 하지만 제조업 활황의 날개가 꺾이면서 이곳 철공소 골목은 본격적인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90년대 이후 대규모 공장이전이 진행되었고, 산업의 쇠퇴로 빈 공장이 증가하며 지역의 슬럼화가 진행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2000년대 이후 공장이 떠난 자리에 문래동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철공장과 예술이 어우러진 문래예술창작촌이 자생적으로 탄생하기 시작했다. 철공소 주민들이 처음부터 예술가들을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영등포구에서는 예술가와 지역주민이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연이나 작품을 지원해 왔다. 또한 관광콘텐츠 개발에도 힘을 쏟고 있다.
‘철부지 문래’라고 이름 짓고 스토리텔링을 활용하여 관광객들에게 매력있는 골목으로 다가가고 있으며 둘째, 넷째 토요일에는 ‘올래?문래!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관광객들은 철공소 골목 사이의 작업실과 벽화를 들여다보고 영등포의 옛이야기와 창작촌 형성 과정을 작가들에게 들을 수 있다. 또한, 주민과 예술가, 사회적기업까지 함께 즐기는 예술축제인 ‘헬로우 문래’라는 아트마켓을 열고 있다. ‘헬로우 문래’는 예술작품 직거래 장터, 작업실 공개, 공연과 파티 등 풍성한 콘텐츠로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관광홍보 기반도 지속적으로 구축해 오고 있다. 홍보 리플렛과 투어 프로그램 홈페이지를 제작했고, 문래동 이야기를 담은 잡지도 발간했으며, 특색 있는 조형물 제작을 연차별로 꾸준히 지원하여 문래동의 모습은 매년 달라지고 있다. 이렇듯이 열심히 달려왔지만, 앞으로도 과제가 많다. 도시계획조례가 통과되고 나면 후속 작업도 체계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문래동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치밀한 계획과 주민간 소통 등이 뒤따라야 한다. 서울시와 적극적으로 협의하여 생활권 계획에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야 하는 과제도 남아 있다. 아무쪼록 문래동의 고단한 삶에 대한 기억이 젊은 예술인들의 상상력으로 재탄생하길 기대한다.
인터뷰_조길형 영등포구청장
문 ─ 철에서 피어난 예술이 있는 곳이라 하던데, 문래예술창작촌을 소개해주세요.
답 ─ 문래예술창작촌이 위치한 문래동은 본래 철강 제조업으로 유명한 서울 남서부의 산업단지였습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IT를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변하면서 그 규모가 점점 축소되었고 대학로나 홍대에 자리 잡고 활동하던 예술인들이 값비싼 임대료 때문에 비교적 저렴한 문래동으로 옮겨오면서 지금의 예술공간이 형성되었습니다.
이곳 문래예술창작촌에는 두 가지의 삶이 공존하는 곳입니다. 하나는 예술가들의 삶, 다른 하나는 철공소 노동자들의 삶입니다. 1층에는 아직 남아 있는 일부 철재상가들이 그리고 2~3층에는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들어차 있습니다. 예술촌 입구를 들어서게 되면 여기가 철공소임을 알리는 듯한 쇠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독특한 철강 조형물을 보실 수 있으며,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듯한 골목골목에는 다양한 벽화들과 예술인들이 남긴 흔적들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옛 철재상가 자리에 지어진 문래예술공장은 예술가들의 창작지원과 지역주민이 함께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문래 동 예술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문래예술창작촌은 흥미로운 문래동의 역사가 거리 곳곳에 배어있고 그 안에 예술의 향기가 있으며, 주민과 함께 즐기며 소통하는 공동체입니다.
문 ─ 영등포구가 추진하고 있는 준공업지역 재생 프로그램은 어떤 것인가요?
답 ─ 산업구조가 탈공업화, 도시형 서비스, 관광여가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영등포구는 준공업지역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영등포의 준공업지역에 신성장산업의 거점을 육성하고 주민생활 기반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수립하였습니다.
한편 문래창작촌 지역은 개발 대신 최대한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정했습니다. 문래창작촌을 문화 여가공간으로 특화시키기 위해 공연, 작품전시 등 공공예술 지원을 통해 문화저변을 확대하고, ‘올래문래’ 투어 프로그램과 ‘헬로우 문래’ 예술축제 등 다양한 관광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여 지역 특색을 살려나갈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주민생활 기반을 강화하기 위하여 준공업지역이 재조정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정비하는 것입니다. 「2030 서울플랜」을 보면 영등포지역은 부도심에서 도심으로 그 위상이 강화되었습니다. 따라서 영등포구는 주민참여단 및 주민협의체를 구성하고 지속적으로 서울시에 다양한 개선방안을 건의하고 있습니다. 준공업지역 종합발전계획 및 도시관리계획 재정비와 「도시 및 주거 환경정비법」 개정 등 지역 환경을 개선하고 용도에 맞게 준공업지역을 조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문 ─ 문래예술창작촌 ‘헬로우문래’ 축제에 대해 알려주세요.
답 ─ ‘헬로우문래’는 철공소와 예술이 공존하는 문래동의 환경을 이용하여 지역 내 사회적기업, 예술가, 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문래동의 대표적인 예술 축제입니다. 문래창작촌 예술가들의 작품전시와 판매, 시민들이 직접 작품을 만드는 체험과 작가들의 작업실을 투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어우러진 축제로 2013년에 시작되어 올해로 3년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헬로우문래’는 지역 예술가들이 만든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곳입니다. 회화작품, 수공예품 등 부담없이 감상하고 구매까지 할 수 있습니다. 일반 시민의 예술작품 구매를 독려하기 위해 25명의 아티스트가 25×25㎝ 캔버스에 작가들의 이야기를 그려 전시하고 경매 형식으로 판매도 하며 공예작가들에게 작품 만들기를 직접 배우고 자신만의 아이템을 만들어 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됩니다.
또한, 다양한 볼거리를 만나볼 수 있는 투어 프로그램인 ‘올래? 문래!’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갤러리, 예술작가 스튜디오, 골목길 벽화, 설치 작품 등 문래창작촌의 다양한 공간과 예술을 접할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방문객들과 예술작가, 사회적 기업 등 축제 참여자들의 교류를 위한 ‘커뮤니티 파티’와 아티스트 작업실 개방 등 예술인과 관광객이 서로 상호 소통할 수 있는 문화 예술 행사입니다.
문 ─ 양평유수지 생태공원에 해바라기 밭이 있다던데, 이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답 ─ 양평유수지는 집중호우 시 홍수방지를 위해 빗물을 저장하여 하천의 수량을 조절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풍수해 피해에서 주민을 안전하게 지키는 중요한 시설입니다. 하지만 해충발생, 악취 등으로 주변 주택가에서는 혐오시설로 인식되었고 여름철 집중호우 기간 외에는 활용도가 떨어지며, 무단투기가 만연한 공간이었습니다. 이러한 양평유수지를 바꿔 주민들의 오랜 고통을 해소하고 부족한 녹지를 늘리고자 조성한 곳이 양평유수지 생태공원입니다.
먼저 주민들이 안전하게 유수지를 탐방할 수 있도록 높이 1~5m 정도의 순환 보행데크를 설치하였습니다. 유수지 곳곳에는 생태연못, 정자 등을 설치하고 메타세콰이어, 갯버들, 연꽃, 옥수수 등 각종 초화류, 덩굴식물, 향토작물이 자라나게 하였습니다. 또한, 유수지 내 농촌 체험용 논과 벌통을 조성하여 학생들의 생태 체험공간을 제공한 것은 물론, 그 옆에 해바라기 밭도 조성하여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친환경 쉼터로 각광 받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문 ─ 중국인들에게는 대림역 8번 출구가 유명하다던데, 이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답 ─ 영등포구는 서울에서 외국인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입니다. 다양한 국적을 가진 외국인 약 40,000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 중 약 25,000여 명이 대림동에 살고 있으며 대다수가 중국인입니다. 대림동에 사는 외국인 2만5000여 명 가운데 약 90%가 조선족과 한족(漢族), ‘한국 속 중국’, ‘조선족 타운’ 등으로 불릴 정도입니다.
대림동에서도 대림역과 중앙시장을 중심으로 한 대림2동에 중국인과 조선족 밀집도가 특히 높습니다. 본래 이들이 많이 거주하던 지역은 가리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리봉동이 재개발되면서 밀려나게 되었고 서울 시내 순환선인 2호선과 가깝고 다세대주택으로 이루어진 대림2동의 지역적 특성과 맞물리며 정착하게 된 것입니다. 대림2동이 한국 속 중국으로 유명하다면 대림역은 중국인과 조선족의 집결지입니다. 대림역은 중국 현지에서도 소개되어 있을 만큼 중국 동포 사이에서는 유명합니다.
그중 8번 출구는 관문이자 집결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 우리나라에 도착한 중국 동포들이 약속장소로 정하는 곳이 바로 8번 출구입니다. 출구를 나오나마자 중국음식 특유의 향신료 냄새와 더불어 한자와 한글을 병기한 음식점, 환전소, 여행안내소 등이 즐비합니다. 대림역 주변에만 90여 개의 직업소개소와 중국계 은행 지점이 있습니다. 12번 출구까지 걸어오다보면 여기가 진짜 중국처럼 느껴집니다. 인근에 있는 중앙시장은 중국 각 지방의 음식을 다 맛볼 수 있어,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대림역부터 찾아오고, 먹고 자고 일자리도 얻어 전국적으로 뻗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한국인이 떠난 자리를 중국 동포가 모여 살면서 그들만의 삶을 형성하고 문화도 만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