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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열리는 화성시
얼마 전 모친으로부터 늦은 시간에 전화가 걸려왔다. 밤에 근처 초등학교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 데 너무 어두워 무섭다며 걸려온 전화였다. 늦은 시간이니 집으로 들어가시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하면서도 근처에 운동할 만한 마땅한 시설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안타까운 맘이 들었다. 도심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공원과 같은 시설이 많이 없는 곳이라 늦은 시간에도 어두운 학교에서 운동을 해야만 하는 것이 몹시 마음에 걸렸다.
그나마 그 초등학교는 열려있었지만 사실 늦은 시간에 닫혀있는 학교도 제법 많다. 대부분 안정상의 이유라지만 아쉬운 점이 많다. 공원이나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마을이라면 다행이지만 공간이 부족한 경우에는 지역주민들이 이용할 수 없는 만큼 아쉬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방과 후 시간에 비는 학교 시설을 주민과 공유해본다면 어떨까. 주민과 학교 모두 Win-Win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러한 고민들에서 출발한 사업이 경기도 화성시 ‘신도시 학교시설 복합화 사업’이다.
경기도 화성시는 2001년 승격 당시 19만 8천명이던 인구가 2015년 8월 말 3배에 가까운 57만 8천여명으로 증가할 정도로 급속한 인구유입을 보이는 도시다. 이렇게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인구 유입은 앞으로도 더 증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급속한 인구의 유입에는 신도시의 증가가 크게 기인한다.
하지만 인구의 증가만큼 주민들의 불만도 동시에 증가하고 있다. 인구만큼 주변 시설이 뒷받침하기가 쉽지 않다. 지역커뮤니티 약화 및 입주민들의 다양한 욕구 충족을 위한 공공편익 시설이 부족하고 시설의 지역적 편중으로 이용자의 불편 또한 동시에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의 현실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방자치단체의 복지비용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으며 세원감소의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이에 택지개발지구내 공공시설 설치에 따른 화성시의 재정적 부담은 가중되고 있는 상태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소하기 위해 신도시에 가장 적합한 학생과 주민을 위한 커뮤니티 시설로 계획된 것이 바로 학교시설복합화 사업이다.
“한 아이가 자라는 데는 단순히 가정교육이나 학교 교육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주민들로부터 직, 간접으로 얻는 경험이 올바른 성장과정에 상당한 영향을 끼칩니다. 바로 여기서 학교시설복합화 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화성시청 평생교육과 윤대성
학교시설복합화 사업은 단순히 시설확충의 개념이 아닌 학교가 지역사회의 중심이 되어 무너진 지역 공동체를 부활시키는 데 매개체의 역할을 수행해내겠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이 있다. 부분에 얽매어 전체를 보지 못해 실수를 한다거나 결과만을 중요시해서 나머지 과정을 생략하는 경계하는 말일 것이다. 단순히 시설확충이라는 개념에 중시해서 사업을 진행하였다면 사업진행에서 중요한 과정을 생략하는 실수가 있지 않았을까.
학교시설복합화 사업은 모두가 배움과 가르침을 나누는 마을 교육 공동체의 역할과 신도시 주민들의 거주환경 개선, 더 나은 교육환경 조성이라는 목적을 갖고 출발한다. 화성시 곳곳에 생겨나는 신도시에 학교와 공원을 분리하지 않고 학교 바로 옆에 공원을 조성하여 낮에는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운동으로 저녁에는 주민들의 쉼터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큰 요지다.
학교시설복합화의 시설 구성은 크게 공통시설과 특성화시설로 구분된다. 공통시설에는 학교 교육과정과 연계되는 시설로 체육관, 도서관, 공연장 등이 있다. 또한 주민들의 수요가 높은 어린이집, 문화의 집, 노인 여가시설 등의 복합시설이 들어서고 학교 개방시설은 방과 후 이용이 가능하여 학생과 주민을 위한 복지를 제공한다.
이에 반해 특성화시설은 필요와 지역별로 달라지는 시설이다. 정보, 영어, 과학 등 분야별로 나누어진 특화전문도서관에 정보화교육장, 글로벌 어학센터, 과학 체험실 등이 도입되어 학교 수업시간에도 활용할 수 있게 한다는 생각이다. 또한 방과 후 교육에도 이용되어 사교육비 절감의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또한 특성화시설에서는 주민들의 다양한 문화강좌와 장,노년층의 취업교육을 비롯한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동시에 진행한다. 이밖에도 동아리, 생활체육 중심의 여가공간에서는 건전한 청소년 문화 정착을 위한 활동과 어르신들의 건강한 여가 활동을 지원한다. 학생과 주민이 모두 혜택을 볼 수 있는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학교시설복합화의 경우 학생과 주민이 함께 이용하는 만큼 우려되는 점도 많다. 특히 수업시간에 주민들이 이용하게 되는 경우 오히려 학생이 피해를 볼 가능성도 있다. 이런 점 때문에 화성시는 설계단계부터 이용 공간의 분리를 염두에 두고 건립한다고 한다. 운동장과 체육관의 경우는 학교 교과시간에는 학생 전용으로, 방과 후에는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또한 공연장과 문화센터의 경우에는 겹칠 가능성이 큰 만큼 사전 예약제를 통해 이용하게 되며 도서관은 학생과 주민이 함께 이용하며 시설을 공유하는 방법을 채용했다.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상호 협력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또다른 문제가 있었다. 바로 안전의 문제다.
교육공간에 일반인들이 침입하여 학생들의 안전에 문제를 끼친다면 이러한 좋은 취지는 금세 퇴색되고 말 것이었다. 이런 우려가 많았기에 일반임의 침입을 통제하기 위한 출입통제시스템을 갖추게 되었으며 화성시 통합관제센터와 연계하여 CCTV를 24시간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방법을 갖추었다. 또한 급작스런 사고 발생 시에도 콜 센터를 통한 신속한 대응을 하고 있다고 하니 안전에도 믿음이 간다.
이러한 긍정적인 효과에도 불구하고 사업추진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행정자치와 교육자치의 이원화 문제로 학교시설복합화 사업에 미온적이었던 교육청 및 교육관계자, 시민 등 다수의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다. 학생을 위한 시설이 들어서야한다는 교육청과 평생교육 취지를 살려야한다는 시의 입장차는 매우 커보였다
이러한 간극에는 양 기관의 소통부재가 있었다. 화성시와 교육청은 입장차를 좁히기 위해 협의회를 열었고 시가 한발 양보해 서로 뜻을 같이할 수 있었다. 그리고 15년 2월 학교, 지자체, 교육청, 시민사회, 주민 대표 등이 학교시설복합화 사업의 성공적인 추진과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서로 협력할 것을 합의하게 된다. 이후 탄력을 받아 사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학교시설복합화는 학생과 주민들의 혜택을 증가시키고 또한 공공부지 매입비와 시설 건립비를 크게 줄이는 효과를 낳았다. 또한 지역주민들의 자원봉사와 교육 품앗이를 통해 운영비도 절감되어 결과적으로 주민의 세금 부담을 함께 줄일 수 있는 사업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
“더 이상 저녁이 되면 불이 꺼진 채 단절된 학교가 아니, 학생과 주민 모두의 새로운 배움터로, 가르침의 터로, 놀이터가 되는 꿈의 학교로 바꾸고자 한다.”는 발표 내용은 계속 기억에 남아있다. 늦은 밤 어두운 학교 속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 모친의 모습과 겹쳐졌던 것이었을 수도 있다.
다수의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조율해서 탄생한 학교시설복합화 사업은 주민과 학생 모두가 상생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학교시설복합화를 중심으로 주민들의 생활이 이어지고 많은 시설이 활성화되면 지역과 학교, 학교와 사람, 사람과 사람을 이을 수 있을 것이다. 단절된 학교가 아닌 이어주는 다리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주목해볼만 하다.
학교에서 무한 경쟁에 시달리는 학생들이 학교시설복합화 사업을 통해 제로섬게임이 아닌 상생하는 구조를 배울 수 있는 중요한 교육의 표본으로 탄생할 수 있지도 않을까. 학교시설복합화 사업을 통해 새로운 교육의 장이 펼쳐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