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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변화 푸른 서초구
얼마 전 현대판 형설지공이라는 이야기로 유명해진 필리핀 ‘형설지공 소년‘이 있다. 필리핀에서 9살 소년이 맥도날드 매장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 아래서 공부한다는 것이 요지다. 그 소년의 이름은 다니엘 카브레라로 다니엘은 어려운 가정형편인 것으로 알려졌다. 소년의 집은 전기세를 낼 여유가 없었고 하는 수 없이 불이 필요한 밤에는 맥도날드 앞에 앉아 공부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판 형설지공이란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형설지공은 ‘손강은 겨울이면 항상 눈빛에 비추어 책을 읽었고, 차윤은 여름에 낡은 명주주머니에 반딧불을 많이 잡아넣어 그 빛으로 책을 비추어 낮처럼 공부하였다.‘는 고사로부터 유래됐다. 가난한 사람이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어가며 고생 속에서 공부함을 일컫는 말이다. 새삼 반딧불이 기특해 보이는 이유다. 그러나 요즘 도시에서 반딧불을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여전히 서울시 도심 한복판에 살아 숨 쉬는 반딧불이 있다. 바로 서초구의 ‘반딧불센터‘다.
아마 서초구를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이 반포의 아파트단지를 떠올릴 것이다. 촘촘히 모여있는 많은 아파트를 떠올리겠지만 사실 서초구에는 아파트가 아닌 일반주택들이 적지 않다. 서초구 주택의 약 36%가 단독/다세대/다가구 주택으로 된 일반주택지역으로 특히 방배동/양재동 지역에 밀집되어있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이 일반주택들이 가진 취약점에 주목하게 된다.
아파트를 일반주택보다 선호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반주택이 아파트 단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활이 불편하다는 인식이 큰 몫을 차지할 것이다. 이러한 불편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특히 관리사무소의 부재가 큰 차이를 만든다.
관리사무소의 부재는 도시에서 생활하는 데 중요한 문제를 갖는다. 집을 비우고 택배를 기다려야하는 상황에서 관리사무소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너무나 큰 차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또한 순찰을 돌아준다거나 집수리를 도와준다거나 하는 점 등은 현대사회의 도시가 갖고 있는 부족한 점들을 해결해주는 매개체의 역할이 되주기도 하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이 주목한 점이 바로 이러한 문제점이었다. 이런 불편들을 해소하기 위해 주거환경과 치안문제 해결해주는 일반주택지역 관리사무소인 ‘반딧불센터‘를 만들고 이곳에서 아이도 돌봐주고, 택배도 받아주고, 순찰도 돌아주겠다는 공약을 하게 된다. 당선이 되고 민선6기가 출범하자 구청은 큰 고민에 빠지게 된다. 과거에 일반주택 관리사무소를 만들었던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백지상태에서 모든 것들을 검토해야만 하는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우선 많은 예산이 투입될 것이 당연해 보였다. 그렇게 되면 사업은 몇 년 못가서 중단될 수 있다는 것이 문제로 떠올랐다. 또한 주민들의 공감을 얻으면서도 꾸준히 지속 가능한 사업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도 고민해야만했다. 집수리업체나 철물점 등의 동네상권을 침범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도 검토해야했다. 말 그대로 백지상태에서 모든 것들을 고민해야만 했다.
많은 검토와 시행착오를 거쳐서 장소확보 등 행정지원은 구청이 하고 운영은 자원봉사를 통해 주민 주도적으로 하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주민의 참여, 협력, 소통을 통해 주민 스스로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면서 동시에 예산 및 인력부담이 경감되고, 사업의 지속성 및 확대가능성을 확보하는 이점을 갖게 되었다.
구청이 필요한 것보다도 주민이 필요한 것을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 지에대한 문제를 주민설명회와 설문조사를 통해 결정하게 되었다. 이용자인 주민이 필요한 것들을 파악해내지 못한다면 사업의 반응은 크지 않았을 것이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결과 마을의 문제를 의논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소통공간인 ‘커뮤니티공간‘과 부재중 택배를 받을 수 있는 ‘무인택배서비스‘, 간단한 집수리에 필요한 각종 공구를 대여하는 ‘공구은행‘, 부모들은 육아정보를 공유하고, 자녀들은 친구와 함께 놀 수 있는 ‘공동육아공간‘, 자율방범대가 늦은 밤 범죄 취약지역을 순찰하는 ‘야간순찰‘, 밤늦게 귀가하는 여성 및 청소년을 집 앞까지 동행하는 ‘안심귀가서비스‘들을 계획하기로 한다.
이러한 과정을 모두 거쳐 전국 최초의 일반주택 관리사무소인 방배반딧불센터가 개소되었다. 공간의 문제는 방배3동에 위치한 경로당의 유휴공간을 활용하여 해결했다. 총 40평 규모로 2층에 반딧불센터를, 지하에는 커뮤니티공간을 만들었다. 소요예산은 3천만원으로 시설공사 및 무인택배함 구입에 사용하였다.
작지만 모이면 환하게 빛을 밝히는 반딧불처럼 반딧불센터는 일반주택지역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밝혀주는 빛이 되었다. 주민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반딧불센터 조성 전에는 아이들이 집에서 혼자 노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공동육아공간이 조성되면서 아이들은 언니, 오빠가 있어 너무 좋아한다.
또한 공구은행이 생기면서 한번 쓰기에 부담스러운 전동공구를 빌려 쓸 수 있어서 좋겠다는 반응도 많이 있었다. 자주 쓰지 않는 공구를 사기에는 부담스럽고 또 빌릴 수 있는 곳도 마뜩치 않았기에 이런 반응을 얻을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밖에도 커뮤니티공간 조성으로 주민들의 모임이 있을 때 이용하기 좋다는 반응도 생겼다. 작은 변화였지만 이용자들에겐 큰 변화로 느껴졌을 것이다.
전국 최초인 반딧불센터 운영과 관련하여 많은 언론보도가 이어졌다. 조선일보 등 신문보도만 19회에 KBS 방송보도가 2회로 많은 언론의 소개가 되었다. 또한 이렇게 언론보도가 이어져 입소문이 나자 타 지자체에서도 관련사업에 대한 문의가 많다고 한다. 지자체마다 명칭은 다르지만 ‘반딧불센터‘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서초구에서 시작한 반딧불이 전국으로 확산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앞으로 반딧불센터는 2015년 설치되는 방배/양재 반딧불센터에 이어 2016년과 2017년에도 각각 2개소씩 총 6개소를 설치할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나 홀로 가구가 많은 지역에 1인가구 지원서비스를 추가하는 등 동별 특성에 맞게 업그레이드 시켜나갈 예정이라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된다. 이밖에도 유휴공간의 발굴, 물품기부 및 자원봉사자의 활용으로 운용비용을 더욱 절감하면서 사회적인 공유문화 확산에 동참할 것으로 계획하고 있다.
반딧불의 빛을 이용해 공부를 했다는 형설지공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서초구의 반딧불센터가 앞으로도 형설지공의 반딧불처럼 일반주택지역에서 필요하지만 부족한 부분들을 밝혀줄 것으로 기대를 해본다. 이러한 센터들이 제대로 구축된다면 일반주택이 아파트보다 불편하다는 인식에도 큰 변화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